제목 : “교회는 무엇으로 말하는가?”
변화라는단어와변질이라는단어가있습니다. 비슷한데그쓰임새와의미는전혀다릅니다. 변화는보통긍정적인의미가강합니다. 하지만변질은그느낌부터의미까지아주부정적입니다. 또두단어의뜻은서로역학관계에있기도합니다.변화하지않으려고집하면변질되기쉽고, 변질되지않으려면변화해야만합니다. 곧움직임의방향에따라변화냐변질이냐가결정됩니다. 포도주도효모가잘발효되면포도즙이좋은포도주로변화되지만효모가일하지않고활동력이떨어지면변질되어아무쓸데없어버려야되고맙니다. 물질뿐만이아닙니다. 사람의인격(혹은인생)도마찬가지이고작던크던공동체도그렇습니다. 더군다나그리스도의몸인유기적공동체교회는더말할나위가없습니다. 구속의은혜와첫사랑, 주님을향한애뜻한마음들, 주님의교회를위한선하고아름다움꿈과계획들을갖고믿음생활과교회공동체가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절박했던마음이식어지고이런저런이유들로어려움과도전이생기다보면변화보다는안주하려고하는마음이찾아듭니다. ‘이정도면되었다싶지, 구태여그렇게까지해야하나’하는생각이지배합니다. 그러다보면품었던푸른꿈은누런색깔로변질되고마는것입니다. 믿음생활과교회는끊임없이변화하지않으면변질되는것은시간문제이기때문입니다. 이변화와변질의원리가오늘사도바울의교회를위한중보기도에그대로나타나있지않나싶습니다. 기도와간구의내용은다름이아닌신앙성숙을위한끊임없는변화와도전, 그리고채워져가는그리스도의사랑을담은신앙인격에두고있습니다. 때로성숙을겉으로보여지는크고많고뜨겁고열정(콧물, 눈물, 말들) 등으로혼동하곤합니다. 하지만과연성숙한신앙인격인지는사실생활에서겪으면서베어나오는성품, 그리고맺고있는관계들을통해서알게되는열매들이지콧물, 눈물이성숙은아닙니다. 그러므로교회/성도는무엇으로말합니까? 그의속사람-신앙인격의성숙으로그가누구인지, 어떤존재인지, 무엇을위해살아가는지보여주어야합니다.
성숙을향한변화를통해교회가말해야할것은…
첫째, 열린인격입니다.
둘째, 품는인격입니다.
셋째, 베푸는인격입니다.
교회는세상이흉내낼수없는신앙인격- 성숙으로말해야합니다. 누구에게보여주기위해서, 남좋으라고성숙해야하는것이아닙니다. 우리자신을위해서변화하고성숙해야합니다. 그래서날마다새롭고도전되고살아숨쉬는삶을사는것입니다. 겉사람은후패해고속사람은날로새로워모두가부럽고본받기원하는복된삶을증거하는것입니다. 성숙한교회는은혜와능력이충만합니다. 차고넘칩니다. 그래서나누고퍼주고부어주어도모자르지않습니다. 그래서날마다날마다구원받는이들이더하여지는교회로성장해나갑니다. 로체스터지역에서작지만큰교회, 감춰져있지만참교회, 척박한사막에오아시스같은교회가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