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2019) 26: 69 – 75

묵상요절: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왜 그랬을까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스로 수습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해결과 회복은 주님의 손에만 달려 있습니다. 바로 죄의 문제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예수님을 팔아 넘겼던 가롯 유다는 큰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자살합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고자 택한 결과입니다. 더 심각한 이차적인 죄까지 지은 것입니다. 곧 교만의 죄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며 심지어 저주하며 맹세하여부인했던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일단 죄책감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끄럽고 고개를 들 수 없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무거운 마음으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때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에 의해서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유다와 베드로처럼 후회스러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때가 부지기수 입니다. 죄책감에 몸부림 칠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해결자이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그분의 손길과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찾아오셔서 베풀어 주시는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믿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