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리였던 마태를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고 당시 죄인들 취급했던 사람들과 교제하시는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느냐고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당시 상황에서 정당한 질문이었느지 모릅니다. 로마 정부를 등에 업고 부당하게 동족의 피를 빨듯이 세금을 거둬들였던 사람들이 대부분의 세리였고 모세의 율법을 거의 지키지 못하고 사는 창기와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 향하여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말씀을 인용하시며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죄인일까요? 누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긍휼–용서하심이 필요한 자일까요? 하나님 앞에 나아갈때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 제물일까요 아니면 사람의 마음의 중심일까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면 과연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을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교제하시면서 보여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정작 마태와 같이 죄인 취급을 받던 이들은 자신들이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배척당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마음에 늘 죄의 짐을 지고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어느것도 하나님 앞에 내세울 의가 없는 것을 스스로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용서의 긍휼도 구하지 못하는 심령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오셔서 불러 주시고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 것입니다. 반면에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청하던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자기 의가 자신들고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함으로 예수님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세리의 마음입니까? 아니면 바리새인의 마음입니까? 평상시 나의 말의 주어가 주로 누구입니까?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의 주어는 늘 겸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