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스스로에게 과연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누구일까?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질문해보기 원합니다. 사람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찬양과 같이 사랑, 그자체이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에 사랑의 관계를 떠나서는 제대로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에 거할때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때는 그 어느 것으로도 대신 채울 수 없는 공허감과 갈급함, 두려움에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동기도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시기와 분노로 발전하여 일어난 사건입니다. 심지어는 지켜주시갰다는 하나님의 돌봄도 외면하고 “쉼이 없는 땅”(놋 땅)으로 가서 그곳에서 하나님과 담을 쌓고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았고 자신만의 문명과 계보를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계보는 그 죄악과 상처, 그리고 그 댓가를 치러야 하는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사랑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사랑의관계)이 회복되고, 또한 형제자매와 온전한 사랑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졌을때, 그리고 그 확신 가운데 살아가게 될때에 인생의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고 행복하고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이루어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관계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이 다름이 아닌 우리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안에서, 교회의 통해서 이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될때에 세상과 인생의 그 어떤 알에도 두려움 없이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은혜와 복의 장으로 주신 교회에서 믿음의 동반자로서 서로간의 사랑의 지수를 높여 나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사랑의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지못하는 믿음생활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을 믿고 받아들일때에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 우리 안에 사랑의 지수(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상승하게 됩니다. 둘째,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먼저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말에 있지 않고 수고에 있습니다. 땀을 흘리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증거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증거되기 위해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희생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셋째,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방법이 올바라야 사랑의 열매가 맺습니다. 사랑은 서로간에 예의와 존경, 배려와 온유함, 친절과 오레참음의 방법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믿음의 동반자인 형제자매간의 사랑의 지수는 주님이 보여주신 바대로 사랑할때 실제로 높아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행복은 “접속”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그리고 성도간에… 우리에게 이러한 사랑의 공동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 교회가 있어서 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