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2/02) 여호수아 2장 “이스라엘을 도운 라합“
– 묵상요절(필사):
* 첫번째 가나안 정탐때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이 돋보였다면
두번째 정탐에서는 단연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의 믿음과 지기가 돋보입니다.
정탐꾼들이 여호수아에게 보고한 내용도 라합이 전해준 거민들의 상황(“마음이 녹았고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과
라합의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라는
라합의 확신이 정탐꾼들을 도왔고 그것이 자신과 가족들까지도 살 수 있는 길임을 안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라면 제아무리 철옹성 여리고성도
이스라엘을 막지 못할 것임을 라합은 본 것입니다.
그래서 여리고 왕과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목전에 두고 성문을 걸어 잠갔지만
라합은 그들을 도운 것입니다.
무엇이 라합에게 그가 알지도 못하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라합은 기생으로 여리고에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막연하지만 뭔지 모를 확고한
하나님의 존재감을 얻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참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만으로도
자신과 가족들의 운명을 맡길 수 있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믿음에는 결단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 알아서 이해해서 하나님께 자신을 열어 놓고 맡기는 것이 아니라
라합과 같이 용기를 갖고 하나님께 자신의 길을 내어 놓는 ‘무모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분이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고, 그분께 권능과 생명이 있음을 아는 것,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믿음의 길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라합의 막연하지만 용기있는 믿음이 이스라엘이 담대하게 여리고 성을 넘어서
가나안으로 진군하는 단초가 되었고,
라합은 그의 가족을 살릴뿐더러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후에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저함 없는 믿음의 용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