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15:1 – 35 (본문읽기)
* 엘리바스에게는 욥의 항변이 마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좋게 젊잖게 충고해서는 욥이 제대로 알아 들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것 같습니다. 엘리바스가 쏟아 놓는 두번째 충고의 말들은 열조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지혜를 무시하는 욥의 불경스러움을 질책하고, 하나님과 맞서는 자의 일평생과 그 말로를 경고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들은 구구절절이 권선징악하시는 하나님을 욥에게 이해시켜 그로 하여금 회개케 하는데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엘리바스의 나름대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치 열조들로부터 전해지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지혜의 전통을 지키는 수호자의 사명의식을 가졌을 수도 있고, 친구인 욥이 적어도 하나님을 향하여 불경 죄를 지어 더 큰 형벌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였지 싶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사명의식(?)이 과연 욥에게는 어떻게 들려지고 받아들여졌을까?, 아파하고 고민하는 욥에게 그가 의도한대로 회개의 마음을 갖게 할 위로와 깨달음의 말이 되었을까? 적어도 욥에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욥의 씨름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옳은 말과 생각을 가졌다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명의식(?)이 때로는 해결이 아니라 더 큰 상처와 문제를 더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일리’는 있는 말인데 ‘이리’가 없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엘리바스의 말이 때로는 나의 말과 생각이지는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일리도 있고 이리도 있도록 지켜보며 기다려주고 적절한 때에 말 할 수 있는 지혜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