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17:1 – 16(본문읽기)
* 이어지는 욥의 엘리바스에 대한 항변은 처참한 탄식과 하나님을 향한 한탄과 원망의 기도가 엇갈려 반복되고 있습니다. 토해 놓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듣는 이로 하여금 폐부를 찌르는 듯한 말들입니다. 끔찍하다 못해 차마 들을 수 없는 표현들입니다.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소망이 끊어지고 짖밟혀 버린자의 토로함 같습니다. 타는 불에 기름을 뿌리듯 엘리바스의 충고는 이제 욥에게 절망만 더하게 된 것입니다. 욥의 항변하는 마음에는 여전히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이토록 극심한 고통을 경건한 자가 겪게 하시는가?” 라는 질문이 깔려 있습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는 욥의 끝을 모르는 고민입니다.
당장 겪고 있는 고난의 극심함 보다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것은 죽음보다도 더 한 고통이 됩니다. 차라리 죽는 편이 고통을 끝내고 쉬는 길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 이슈가 되고 있는 안락사를 주장하고 있는 이들의 입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볼 수 없는 절망을 넘어서 아주 희미하지만 희망의 가닥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에 절망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절망 중에서도 희망을 빛줄기를 찾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의 끔찍하기까지한 모습이고 우리가 절대로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너무 쉽게 포기하고 단정하는 마음을 거두시고 소망의 끈을 발견할 수 있는 혜안을 뜨게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