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2: 1 – 10 (본문읽기)
* 부스 사람 엘리후의 등장입니다. 핵심 주제인 고난에 대해서는 결론도 못내리고 욥은 욥대로 의인이라 주장하고 더 이상할말을 잊은 세 친구들의 대화를 듣다가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끼어 듭니다. 그의 답답했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 가슴은 봉한 포도주 같고 새 가죽부대가 터지게 될 것 같구나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
그동안 대화를 경청하며 참고 기다렸던 이유는 자신도 지혜자이지만 욥과 세 친구들보다 연소하여 도리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에게까지 화살을 들이대고 있는 욥을 향하여서 그의 견해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지혜는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달은 자 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엘리후의 논점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욥의 고난에 대한 지혜가 펼쳐지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지리했던 인과론적 논쟁의 관점을 넘어선 하나님의 지혜의 관점에서 고난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장으로 모든 대화가 바뀌게 됩니다.
오늘 엘리후는 마치 평행선을 긋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욥vs 세 친구들에게 그들의 시선을 돌려 하나님을 향하게 하고 있습니다. 중재자의 역할을 자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중재자 엘리후의 지혜를 통해서 욥의 고난을 바라 볼 수 있게 됩니다. 중재자의 역할이 늘 필요한 것이 인생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늘 우리의 짧은 지식과 지혜, 경험과 연륜에 갇혀서 그 너머를 보지 못하고 있을때 중재자를 통해서 열려지고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풀 수 없는 문제를 풀어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중재자이시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도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중재자, 갈등과 분쟁에 평화의 도구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