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6/23) 욥기 34장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는가?”
– 묵상요절(필사):
* 고난의 의미를 깨닫기 전까지는 크던 작던 고난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도전을 줍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부당한 고난을 보고계신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능하신 분이시라면 이 고난은 무엇인가? 하지만 고난을 통하여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면 고난 중이라도 고난은 더이상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두신 바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욥의 항변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공의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면 왜 고난에 대해서 침묵하고 계신가하는 욥의 항변을 인용하면서 엘리후는 반박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역으로 만일 하나님께서 공의로 다스리고 계시지 않고 계신다면 과연 어떻게 모든 생명이 잠시라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며, 힘이 있다고 왕이라고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좌지우지 못하고 가난한 자들과 매한가지로 부지불실간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되는가? 한마디로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돌보고 계시지 않다고 항변하는 것은 무식이고 죄에 죄를 더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욥이 이 지혜를 깨달으려면 한참 멀었고 그가 당하는 고난은 그때까지 지속될 것이라 말합니다. 즉 욥의 고난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에 이를때까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후의 반박 연설에 내포된 메세지가 바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순간 고난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더이상 고난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은혜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때까지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이기는 비결은 조건과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께 한발자욱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