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6: 8 – 16 (본문읽기)
* 계속되어 지는 엘리후의 연설입니다. 먼저는 고난에도 유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인내하며 하나님께 반항하지 않고 순종하면 절대절명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며, 처한 곤고함에서 다시 일으켜 부요케 하실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할 즈음에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여시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너를 곤고함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넓은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네 상에 차린 것은 살진 것이 되었으리라”
이것은 욥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이 무자비하고 무익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뜻과 교훈이 있어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다보면 하나님깨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하는 말입니다. 반면에 17절 이하에 이어지는 연설에는 이러한 고난을 통해 주시고자 하는 교훈에 귀를 막고 당하는 고난으로 하나님께 반항하고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헛된 수고가 될 것이고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라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엘리후의 연설은 ‘고난을 대하는 자세’ 에 따라 고난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되며, 고난 자체보다도 고난 중에 우리의 마음의 자세에 따라 의인됨과 악인됨이 갈리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에도 겸손히 자신을 성찰하며(회개하며) 하나님의 교훈에 귀를 기울일때, 그 곤고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으로 당하는 고난 중에도 끝까지 인내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합니다.
인생에서 겪는 고난으로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는” 자세가 아니라 더 크시고 놀아운 계획을 가지시고 지금도 이 창조 세계 가운데서 일하고 계신 주님을 발견할때 가질 수 있는 자세라 생각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찌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년수를 계산할 수도 없느니라”
오늘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찬양이 말씀과 함께 마음에 떠오릅니다.
-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 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후렴)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 다면 어떤 역경(고난)도 견딜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