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4/3) 요한복음 19: 38-42

묵상요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줄행랑을 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어도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의외의 두 사람(제자)이 예수님의 장례를 정성스럽게 치렀습니다. 앞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저마다 얻고자 하는 바램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아무런 댓가 없는 헌신을 예수님을 위해 한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의리 있고 도리를 다하려는 고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에 도망가고 숨었던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들로 변화 받아 등장하는 역사에 그들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드러내지 않고 복음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예수님을 위한 아름다운 장사를 끝으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묻어버렸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후자라면 아무리 선한 행위였다 하였어도 사람의 일에만 미치고 만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를 넘어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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